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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출판::

풀뿌리의회의 예산 통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 의회 주도의 주민 참여

풀뿌리의회의 예산 통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서형원 | 과천시의회 의장, 무소속
ecopol.tistory.com, twitter: @seohyungwon
월간 [자치행정] 기고글


지난 9월 1일 열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주최 주민참여예산 토론회는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는 물론, 다양한 지역의 지방의원,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두루 참여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민참여예산제의 시행을 공약으로 내건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기 때문인데, 주민참여형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외사례를 조사하고 국내 적용을 위해 노력해온 시민단체들의 꾸준한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공약으로 내걸거나 형식적으로 시행하긴 쉽지만 그 취지를 온전히 실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이 제도다. 주민참여예산은 조례와 기구로 이루어진 “제도”라기보다, 예산의 편성-심의-결산-환류 과정에 다양한 처지와 관심을 가진 주민과 당사자, 집행부와 의회가 상호작용하는 매우 역동적인 참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온전히 시행되기 위해선 집행부, 의회, 주민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주체들이 의욕과 역량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 것이다. 결국 예산의 주민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각 주체가 하나씩 그 계기를 마련해가게 될 것이다.

예산을 심의, 의결하며, 그 과정을 감사, 조사하고, 그 결과를 검사, 승인하는 풀뿌리의회가 예산 통제를 개선한다면 그 방향의 핵심도 결국 주민참여의 확대에 있다.

지난 5대 과천시의회의 서형원, 황순식(진보신당, 현 부의장) 의원은 매년 예산심의에 앞서 주민참여 예산워크숍을 개최하였다. 11월 21일 예산안이 의회에 제출되고 12월 5일 예산심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략 12월 2, 3일쯤 주민들에게 다음 해 예산안의 내용을 브리핑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

의원들이 브리핑하는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구조적, 전문적 분석보다, 있는 그대로의 예산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방식이며, 복지나 도시계획 등 특별한 관심사가 있다면 별도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토론과 그 이후의 과정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해외방송 홍보예산에 대해서는 “누가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할 일이 있느냐?”, 나눠주기식 예산에 대해서는 “이런 예산은 범죄”, 줄어드는 고용 창출 예산에 대해서는 “심의 때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고 편성과정에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등 주민들이 느끼는 그대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의회에서 몇 년 예산심의를 하다보면 평범한 시민의 정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민들은 몇 만 원, 몇 십만 원의 낭비에도 놀라고 격분한다. 작은 돈을 소홀이 다루는 지방자치라면 큰 돈도 멋대로 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산워크숍에 참여하여 예산의 실상을 느끼게 된 주민들은 예산심의 회기에 방청을 하기도 하고 의원들에게 의견을 제출하기도 한다. 과천시의회에서는 예산을 알고 참여하게 된 주민들의 요구로 최초의 의회 주최 주민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임기의 예산워크숍은 두 의원의 소박한 자구적 실험에 불과했지만, 결국 지방자치를 주민의 자치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취지를 온전히 담고 있다고 생각하다. 이런 실험을 의회의 공적 활동으로 정착시키고 나아가 더 많은 주민과 집행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6대 과천시의회에 주어진 과제이다.

과천시의회는 의회 운영의 모든 과정에 주민 참여를 통합하기 위한 방안을 설계하고 있다. 공식 회기의 전, 후, 과정에 주민참여의 기회를 만드는 것은 물론 다양한 간담회, 토론모임, 강좌, 티파티(tee-party) 방식 등이 진행될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주민을 위해 중요한 안건을 다루는 시정질문 등을 야간이나 주말에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주민참여를 위한 설계에는 공간의 변화도 포함된다. 각종 행정자료와 관련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편안한 북카페를 설치하여 주민들이 언제든 정보를 얻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의회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짧은 의장 임기동안 가능하다면 각종 회의공간도 권위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싶다.

주민의 예산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의회 운영 개선의 핵심이 될 것이다.

도시계획과 개발사업, 교육․보육, 여성의 사회적 기업, 장애인의 이동편의와 고용, 환경과 먹을거리 등 다양한 정책 의제에 대해 전문가, 의원, 주민, 이해당사자가 함께 하는 교육과 토론의 자리를 월 2회 이상 갖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찻집이나 호프집에서 열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은 예산으로 구체화될 정책에 대해 의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주민의 이해와 참여를 촉진하며, 지역사회의 공론을 모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역의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의회 고유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여름, 가을을 거치는 예산편성의 과정에서 주민으로부터 예산 요구를 발굴하고 집행부에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지 개별 민원을 들어 요구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요구 사이의 조정을 주민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회가 이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심의에 앞서서는 예산안에 대한 주민워크숍을 실시한다. 이때 발굴된 주민의 목소리를 정리하여 의회는 예산심의에 반영하고 집행부에 보내어 충실한 집행을 독려한다. 심의 과정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주민들에게는 의견을 내는 방법과 의회방청을 지원한다.

예산의 삭감여부 및 규모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계수조정은 일반적으로 비공개로 열리고 있다. 비공개 계수조정은 소수 이해당사자의 지나친 개입을 차단하여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의회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주민의 참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뤄진다면 계수조정이야 말로 가장 많은 주민들이 방청하는 역동적인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천시는 의회의 요구로 심의 이전의 예산안을 결정된 예산서와 함께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예산서와 결산서의 민간이전경비는 지원받는 곳 기관의 명칭을 모두 기록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예산 관련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 제고 노력은 주민 예산참여의 전제조건에 해당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예산과 정책에 관한 의정활동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병행해갈 것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연구계획과 성과물을 전제로 한 의원모임의 연구활동 지원, 의회가 주도하는 수준 높은 정책토론 개최 등을 추진할 것이다.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 곧 의원과 의회가 힘을 갖는 길이다. 집행부에 비해 의회의 권한이 약하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은 얼핏 보면 의원의 권한을 뺏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민이라는 지방자치의 진짜 주인을 등에 업음으로써 의회와 의원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