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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출판::

[옛글]또 침묵한다면 이번엔 누구 차례입니까? 2004.6


2004년 6월. 고 김선일 씨의 죽음 이후에 쓴 '개인성명'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투박한 힘과 열정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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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성명]또 침묵한다면 이번엔 누구 차례입니까? 

일어나 저항합시다.
부도덕한 침략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충분이 저항하지 못했고,
팔루자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갈 때 우리는 충분이 아파하지 않았고,
미국 민간인들이 참수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나의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 이웃 김선일 씨가 고통스런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침묵한다면 이번엔 누구 차례입니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말도 꺼내지 못할 참담한 심경입니다.

두렵습니다. 그의 죽음에 우리가 침묵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무뎌지고 그 무감각 위에 죽임과 전쟁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두렵습니다. 죽음에 대한 분노가 도리어 전쟁을 저지른 이들, 전쟁을 도운 이들의 책임을 묻어버리고 증오의 악순환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전쟁의 공범자들은 벌써 이 참혹한 일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장세력에게 분노하라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입니다. 무고한 민간인을 처형한 자들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범자들이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또 다시 증오와 전쟁과 피의 보복의 악순환으로 몰고가려 할 때, 우리는 마땅히 전범자들의 책임을 묻고 전쟁과 파병의 중단, 평화의 회복을 향한 흔들림 없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전쟁에 협력하는 일을 재고하라는 무장세력에게 한국 정부와 대통령은 파병은 확고불변한 원칙이라는, 사실상 선전포고와 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단 한발만 물러나 다시 검토하겠다고만 했어도 그 분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저들이 깜짝 놀라 서둘러 한 일이라곤, 저들의 원칙인 추가 파병에 혹시 흔들림이 있을까 염려하여 못을 박는 일이었습니다. 그 대못으로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내쳤습니다.

이쯤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이 악순환은 그저 반복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우리 이웃, 나 자신을 노리고 조여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당한 침략 전쟁에 반대하고 그보다 더 부도덕한 파병을 저지하는 일이 이 무서운 악순환을 끊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저 참담한 일을 저지르는 이 나라 집권자들을 어찌해야 할까 심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들을 저 자리에 놓아두고 국민을 전쟁의 한 가운데로, 전쟁의 정신적 공범자로,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일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인지 재차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평화를 원칙으로 삼는 평화정부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