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 이길진 옮김 | 전 32권 | 솔
하여간 이 책을 잡는다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한번 떠오른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도서관을 세번이나 들락날락하고 결국 빌리고야 말았다. 앞으로 두달은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얘길 평소에 할 수가 없는 건 다 이런 짓들 때문이다. [자유로서의 발전]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일본을 알고싶다는 것이 동기였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큰 영향을 주고 받는 이웃이면서도, 실제론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 일본. 일본이 더 어려운 이유는 언어적인 면이다.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서를 뜨문뜨문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일본어 발음을 한글, 혹은 영어로 옮긴 것처럼 황당한 게 없다. 사람이나 지명을 아무리 들어도 외워지지거나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지도를 봐도 한자를 보다가 가나를 보다가 알파벳을 보다가 한글을 보다가 하다보면 완전히 헛갈려버려서 온통...
지난 번 아시아태평양초록정치네트워크 교토 회의에 다녀오고 나서 일본을 좀 더 알려는 노력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1) 일본사를 공부해볼까? 2)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역사 소설을 읽어볼까? 3) 일본어(가나와 한자) 읽기 교본을 사서 공부해볼까? 이 세가지를 생각했다.
역사는 아웃. 책을 찾아보다가 중단. 국민학교 4학년에 처음 국사라는 걸 접한 그 순간부터 역사라는 과목에 흥미를 잃어 대학 때 '학습'에 꼭 포함되는 경제사(이것도 역사)마저도 싫어하게 된 나로서는 역사책으로 접근한다는 건 무리.
일본어 읽기 교본은 90년 전후에 활동가들을 위해 발간된 교본이 내게 있었는데 집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고 말하지만, 긴 대하소설을 읽을 생각을 떠올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는 게 정답. 게다가 '일본을 이해한다'는 멋진 명분까지 갖췄으니.
그제 빌려서 지금 세권째 읽고 있는데, 여전히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은 전혀 익숙해지질 않는다. 심지어 어느 대목에서는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오다이)의 이름을 보고, 이게 누군가... 하고 있었으니. 주인공의 현재(어린 시절) 이름이 타케치요가 맞는지... 하여간 그 수많은 인물 중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건 다섯 사람 이내다. 역시 일본어 읽기를 먼저 공부할 걸 그랬나? 그 고유명사들과 한자의 관계를 알면 그렇게 까막눈 같진 않을 텐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래왔겠지만, 대범함, 의연함, 냉엄함, 지략 같은 '남자적' 품격에 매혹되는 걸 막기 힘들다. 역사소설이 흔히 던져주는 변화와 생멸에 대한 담담함, 무상함 등의 정서 - 그렇기 때문에 인간사의 세세함과 알콩달콩함에 무심해지고 짐짓 초연하게 하는 점도 만만치 않다. 흔히 삶은 한구석쯤 비루하기 마련이므로, 그 비루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문학이나 영화의 이러한 장쾌함은 대단한 마력, 흡인력을 갖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거기에 더해 작가가 못을 박듯 설정한 문제의식이 있다. 전쟁을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인간적, 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
일본어 읽기 교본은 뭐가 좋을까? 짧고 압축적인 걸로...
[출처]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작성자 깃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