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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밀한 역사」읽기 시작하다 (04.8.5)



인간의 내밀한 역사 An Intimate History of Humanity
테오도르 젤딘 Theodore Zeldin,  1994


오구로와 최경송의 집요한 권유. 술술 읽힐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날 것처럼 접하게 될 듯한 기대.

박경리의 토지와 더불어 오랜만에 찾아온 독서 중독, 토지를 끝내며 금단 증세에 시달리다 쉽게 골라잡은 책.

8월 2일, 집으로 배달되다.

스무쪽을 읽고. 아주 좋은 번역이다. 밑줄을 그으려는 유혹을 버리기 힘들다. 나로선 저자가 꺼내려는 이야기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

밑줄 긋기 시작한 22쪽부터.

...홀로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들 - 인용자)이 폭력을 즐기는 사람들한테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노예 제도가 존재했다. 폭력적인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타고나는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에 전역사를 통해 거의 승리해왔다.

...배고픈 자들은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다... 한 미국의 역사학자는 복지 제도에 의존해 살고 있는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들 노예에 비유했다.

...각자자신이 약간의 특권을 갖고 있고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간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을 볼 수 없었다. 미국의 농장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가 다른 아프리카 출신 노예를 채찍질하는 일은 흔한 광경이었다.

...자유인들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로마의 귀족들은 황제의 관료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황제는 국정에 노예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가장 믿을 만한 관리, 군인, 시종이 되었다... 이들은 최고의 직책에까지 오르고, 심지어는 수상이나 황제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고용주에 의해 도덕적으로 거세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통계는 전혀 없다.

새해 첫날 새벽 비슷한 생각을 쓴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었다. "며칠 전 우리나라 한 경제부처 장관이 미국 쇠고기는 괜찮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더군요. 과학적 가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왜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있을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이웃들과 제 가족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의 입을 통해 말한 자, 그의 탈을 쓴 그 내면의 진짜 주체가 누구였을까? 그를 노예로 부리는 자가 누구일까?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기에 앞서 그 삶이 측은하고 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색정치로의 탈출, 흥미진진한 새해] www.greens.or.kr)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을 맡기보다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기를 더 선호하는 모든 사람들은 슷로 노예가 된 러시아 노예들의 정신적인 후계자들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3분의 1이 그렇다고 한다. 자유는 피곤하고 괴로운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는 것이 힘들 때는 자유에 대해 어떤 입에 발린 찬사를 늘어놓아도 늘 자유에 대한 애정은 식어버렸다.

자유를 갈망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유에 실제로 도달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자유를 갈망하는 상태, 그 긴장감, 혹은 위안을 위해서, 혹은 비루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자유를 견딜 수 있는가', '자유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에서 도출되지 않는가? 다음의 문구를 더 숙고하라.

...노예 제도의 역사로부터 내가 이끌어낸 결론은, 자유가 단지 법으로 보호되는 신성한 권리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들은 습득되어야 할 기술이다. '만약 당신이 기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당신은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이 법이 당신에게 해주는 말의 전부다.

기타를 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기타가 아니다. 손가락 끝이 수 없이 문드러지고 다시 굳어지는, 나 이외의 어디서도 빌어올 수 없는 과정을 겪어내는 것이다. (역시 오구로와 최경송이 권한 만화 [20세기 소년]의 겐지의 이야기도 그렇다.)

...대부분의 만남에서 사람들은 경계심이나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진정으로 깊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이 세상의 소음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 상투적인 진술에도 울컥하는 공감을 느낀다.
화가 엘 그레코(El Greco)의 이야기에 또 깊은 공감을 느낀다. 그 결론부만 다음에 옮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너무 좁혀 생각하면 영혼의 동료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신들만의 자랑스런 역사를 건설하는 데 공헌하기보다도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조화시키는 데 공헌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그는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나는 명백히 고립된 개인들 사이에 심지어 몇 세기를 가로질러 어떻게 이러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며, 또 어떻게 그것이 드러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유대와 소통. 물론 역사와 달리 여행은 시간을 넘어서게 해줄 수 없겠지만.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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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5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