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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음악::

[옛홈피07.2.25] 조정래<아리랑>1~12


조정래 | 아리랑 | 전12권 | 해냄출판사

박경리 <토지>의 주인공이 사람이라면 <아리랑>의 주인공은 역사 내지는 겨레. 역사, 현실이란 가차 없다. 가차 없는 현실에 접근하려는 소설.

죽음의 기록. 특히 자기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 당한 겨레/무리의 구성원들이 부닥치고만 죽음의 숱한 양상들.

해방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해방이 감격과 환희와는 거리가 먼 현실로 이어졌음을 퉁명스레 잘라 말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광범위하고 목적의식적이고 치열한 싸움이 지속되었다. 그 싸움들 또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지주로부터, 마름으로부터, 과거의 동료로부터, 소련으로부터의 배신과 뒤잇는 좌절로 점철되어 있다. 해방은 이러한 싸움의 결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듯한. 더 중요한 것. 살아가는 일이 곧 거대한 저항이었다.

이 시절을 역사학자들이 제대로 복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역사와 숱한 사회과학이 그 시대의 여러 단면을 조명했어도 삶의 시대적 총체에 도전하는 문학적 성취의 가치는 남 다르다.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필욘 없음. 역사니 책무니 따위는 접더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소설. 극적인 시기를 살아간 숱한 인생배역들의 삶 - 그러니까 눈물, 희망, 좌절, 성취, 사랑, 애증, 분노를 담은.

절박성.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어디론가 줄달음칠 절박성이 존재하는지. 절박하지 않은 게 나쁜 건 아니다. 저마다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증표이므로. 정치는 절박성에 호소한다. 가공의 절박성이기 쉽다. 가짜 절박성이 아닌 무엇이 나를 움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