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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

온이와 걸은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이야기 : 1. 준비 과정, 항공편, 일정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며, 


보통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트레킹이라고 부르는 걷는 길 중에, 고쿄라는 고산지대의 호수와 봉우리를 들러 촐라라는 고개를 넘어 칼라파타르 봉우리에 오르는, 고쿄-촐라-칼라파타르 트레킹을 온이와 다녀왔습니다. 도움을 받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약속을 한 탓에,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어서, 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선거 게시물들을 아래로 좀 밀어낼 겸^^ 하나씩 여기도 올려봅니다. 


연재하고 있는 커뮤니티는 아래 두 곳입니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카페 : http://cafe.naver.com/trekking

뽐뿌 등산 포럼 : http://www.ppomppu.co.kr/zboard/zboard.php?id=climb




많은 분들의 친절한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 고마움을 달리 갚을 길이 없네요. 열심히 잘 살면서 조금이라도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로 갚으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녀와서 후기 남기겠다는 약속은 지켜야죠. 저만 기억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실 약속입니다만, 그래도 약속이니까.^^ 진작에 쓰려고 했는데 사는 일이 바빠 늦었습니다. 트레킹 준비의 모든 것에 대해 큰 도움을 받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카페와, 장비와 옷에 대해 귀중한 조언을 얻은 뽐뿌 등산포럼, 이 두 곳에 후기를 올리려고요. 이왕 다녀왔기에 저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싶기도 하네요. 


이미 멋진 후기들이 많아서 글쎄요, 이 글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경험한대로, 느낀대로 써봅니다. 떠나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일정을 짜고 비행기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 저도 수십 편의 후기를 뒤져 읽으며 마음을 다지고 수 많은 시나리오를 짜봤습니다. 이 글도 쿰부 트레킹을 준비하는 분들이 지나치며 읽으실 많은 후기 중의 하나가 되면 다행이겠습니다. 당장 떠나지 않으실 분들에게도 강한 '뽐뿌'가 되면 좋을텐데...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꼭 가야한다는 게 이번 트레킹의 결론이거든요.^^


시작해봅니다. 



촐라패스를 넘어 만난 어떤 순간. 당시의 메모를 보니 이랬다. 

"충만의 순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풍경과 내 몸을 오래 기다려온 듯한 이 바위 말고도, 이 순간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어긋남이 없었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햇살은 포근했다. 저 아래 물소리, 어디선가 새소리. 노곤함과 평화. 

가라 가라 가라. 꼭 가서 열 번 후회하고 한 번 어떤 순간을 만나라. 깊은 후회와 영혼을 흔드는 경탄을 두루 겪을 수 있다면 여행은 가치 있다. 그 순간은 꼭 온다. 나는 오늘로 두 번째 그 순간을 겪는다."



실직자가 되었고,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어딘가 다녀와야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지금 밖에 할 수 없으니까 빚을 내서라도. 


선배님이 같이 가자셨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마음이 동했다. 아내는 내가 10년 전부터 꿈 꾸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면 어떠냐고 했다, 고맙게도. 북경, 몽골 초원, 바이칼,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톡을 지나는 경로를 짜다가, 아니다 히말라야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야겠다, 눈 쌓인 봉우리를 봐야겠다. 이유는 두 가지 뿐이었다. 


안나푸르나에 다녀온 이들이 많았고, 특히 서킷 트레킹 후기들은 마음을 들뜨게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사가르마타가 눈에 들어왔다. 쿰부라고? 에베레스트, 아마다블람, 초오유 이런 이름들, 5천 미터 위아래에 줄지어 있다는 고쿄의 호수들과 고쿄리의 설봉 파노라마, 고산 마을의 사람들, 생명 이전의 풍경 같은 황량한 땅들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은 정해졌다. 쿰부 트레킹이다. 고쿄, 촐라, 칼라파타르다. 


온이가 같이 가기로 했다. 여섯살 적부터 관악산, 청계산을 오르내렸으니 괜찮을 거다. 사춘기 겪으면서 몸을 잘 안 쓰긴 했지만 그래도 날래고 강단 있는 녀석이니 괜찮을 거다. 한 번은 나와 크게 싸웠는데, 아빠가 미워도 히말라야엔 가야겠단다. 그런 점은 마음에 든다.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 했다. 나야 좀 문제가 생겨도 되지만 이 녀석은 어떻게든 멀쩡한 모습으로 엄마 곁에 돌아오게 해야 하니 말이다. 물건이나 일정은 꼼꼼히 준비한다 해도, 아빠란 무시해야 제맛이라고 여기는 사춘기 딸과의 두 주 트레킹, 삼 주 여행이라니, 진정한 모험은 촐라패스가 아니라 이 녀석일 것 같았다. 


쿰부 트레킹으로 정했고, 트레킹의 시종점은 루클라,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고쿄와 칼라파타르는 둘 다 가기로 했다. 방향은 고민 끝에 고쿄에서 칼라파타르, 시계 방향으로 정했다. 조언을 들어보니 올라 갈 때 가파른 - 조언하신 분의 표현에 따르면 오르기가 불가능해보이는 - 길이냐, 내려갈 때 가파른 - 불가능해보이는 - 길이냐 하는 선택이었다. 내려갈 때 굴러떨어지는 것보다 올라갈 때 힘들어 죽는 게 낫겠다. 고쿄에서 평화를 누리고 칼라파타르에서 하일라이트를 찍자는 생각도 있었다. 고려하지 못한 건 해 뜨는 방향이다. 우리처럼 서에서 동으로 넘으면 해를 늦게 만나게 되므로 몹시 춥다. 안 가봤지만, 반대로 왔으면 손가락이 조금 덜 고생했을 것 같다. 물론 추위를 안 타는 온이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여행 파트너, 그러니까 일정을 책임져줄 업체를 선정하는 게 어려웠다. 우리 생각을 존중해주고, 가이드와 포터 선정에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현지 항공편이나 여러 절차에 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했다. 비용도 적절해야 했고, 무엇보다 그 곳 사회와 환경에 책임을 느끼는 업체였으면 했다. 작은 돈이지만 내가 지출한 비용이 가이드와 포터에게 조금 더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그 곳을 사랑하는 여행자들 누구나 갖는 마음일 거다.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인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가 네팔 시 센터(S.E.A Center: Social Enterprise Activation Center)의 매니저 S 씨를 소개했다. 아샤라고 불렀다. 이런! 나랑은 이미 페친이었다. 어쨌든 현지의 일은 시 센터의 여행사업체인 맵 네팔(Map Nepal)이 맡아주셨다. 고마운 일이 많지만 광고가 될까봐 맵 네팔에 대해선 여기까지. 

 

항공편은 예약했다가 적지 않은 수수료를 물고 취소하는, 지금까지도 속이 쓰린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중국동방항공으로 결정했다. 40만 원대 후반의 착한 가격이 장점이고, 오갈 때마다 두 번을 갈아타고 중국에서 각 1박을 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중국에서 잔다고? 온이와 나는 이게 웬 보너스인가 했다. 예약할 때 실수를 해서 갈 때 1박 돌아올 때 2박을 하는 표를 샀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쿤밍과 칭다오를 들르게 됐다. (저렴한 표를 구했지만 동방항공은 저가항공이 아니다. 충실한 식사를 포함해 제대로 된 기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술은 안 준다. 트레커에게 제일 고마운 건 기내 반입 이외에 1인당 23 kg 짐을 두 개씩 부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아니었으면 우린 짐 때문에 몹시 고생할 뻔했다. 우리의 경우 수하물 조건이 전자티켓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 몇 차례 혼선이 있었지만 어쨌든 다 받아줬다.)


트레킹 일정을 짜는 건 다른 일에 비하면 쉬웠다. 국내와 네팔의 트레킹 업체들이 제공하는 표준 일정들이 제법 많았고, 잘 찾아보면 구간마다 걸리는 시간과 고도 변화도 알 수 있었다. 숫자만으로는 느낌이 안 오니까 네히트 카페와 트립어드바이저 쿰부 포럼 등등에서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뒤졌다. 일정을 단축하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문제 없다. 우린 시간이 많아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확정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28 (인천공항 난징 쿤밍

10.29 (쿤밍 카트만두여행사가이드 미팅.

10.30 (장비 구입시내 관광트레킹 짐 꾸리기.

10.31 (트레킹 1일 차카트만두 루클라 비행루클라(2860) ~ 팍딩(2610) 트레킹.

11.1 () 2일 차팍딩 조르살레(2740) ~ 남체바자르(3440)

11.2 () 3일 차. 남체바자르에서 고소적응에베레스트 뷰 호텔까지 소풍.

11.3 () 4일 차남체바자르 몽라(4080) ~ 포르체탱가(3680)

11.4 () 5일 차포르체탱가 돌레(4038) ~ 마체르모(4470)

11.5 () 6일 차마체르모 고쿄(4,750)

11.6 () 7일 차고쿄리(5357) 등반. 고쿄 호수들 탐방.

11.7 () 8일 차고쿄 고줌바 빙하 횡단 탁낙(4700)

11.8 () 9일 차탁낙 촐라패스 종라(4830)

11.9 () 10일 차종라 로부체(4940) ~ 고락솁(5164)

11.10 () 11일 차칼라파타르(5545) 등반고락솁 로부체 두클라(4620) ~ 딩보체(4410)

11.11 () 12일 차딩보체 팡보체(3930) ~ 텡보체(3867)

11.12 () 13일 차텡보체 사나사 ~ 조르살레

11.13 () 14일 차조르살레 팍딩 루클라

11.14 () 15일 차루클라 카트만두 비행

11.15 () ~ 16 (일) 카트만두, 박타푸르에서 놀기.

11.17 (카트만두 쿤밍

11.18 (쿤밍 칭다오

11.19 (칭다오 인천공항



일정은 '대체로' 예정대로 진행됐다. 날씨가 좋았던 덕이다.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녀와서 다시 절감했다. 우리가 보기엔 날씨가 괜찮았는데 14일에 루클라에서 항공편 결항으로 하루 더 묵게 되었다. 다음 날도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트레킹 뒤쪽에 며칠 여유를 두는 건 필수다. 자칫하면 루클라에 발이 묶여 귀국하는 비행편을 놓치게 될 수 있다. 


내가 심한 고소증에 걸린 탓에 일행과 헤어지기도 했고, 우리 트레킹에 합류한 분과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 탓에 약간의 변경도 있었다. 고쿄에서 묵은 이틀 동안도 몸 상태에 따라 예정과는 조금 다르게 움직였다. 하여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곳에서 벌어질 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일정이어야 한다. 반드시.  



아빠. 남체바자르 고소적응일의 에베레스트뷰 호텔 산책. 이 산책만으로도 이미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찍 찾아온 고소증으로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느라 제 정신은 아니었다. 



딸. 남체를 떠나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에 들어서며. 트레킹 내내 고산증은커녕 감기 한 번 안 걸렸는데 돌아와서 큰 병에 걸렸다. 네팔병. 


다음 편에서 준비물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부터 여행기가 되겠네요. 일정과 준비물이 제일 쓸모 있는 이야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