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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

율곡 이이 <성학집요>, 제2절 수기(修己) 중 성실(誠實), 교기질(矯氣質)

새길 말씀이 많네요. 



131015성학집요144-162.hwp




성학집요 ― 144162쪽

율곡 이이, 김태완 옮김 | 인문학서당 모임 | 서형원 | 2013.10.15

 

제2절 수기(修己) 중, 제5장 성실(誠實)

 

공자가 말했다. “충실과 믿음을 주로 하라.” (논어, 아래도 같음) ㅇ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 충실과 믿음을 주로 삼아야 한다.

 

자장이 행위의 도리를 물었는데,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말이 충실하고 믿음직하며 행실이 독실하고 경건하면 비록 오랑캐 나라에 가더라도 행동할 수가 있지만 말이 충실하지도 믿음직하지도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도 경건하지도 못하면 비록 자기 고향 마을이라도 행동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옛날이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공부하였는데 오늘날 배우는 사람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자신에게서 터득하려 공부하면 자기를 위해 공부했지만 마침내 사물을 완성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남에게 알려지길 바라여 공부하면 끝내 자기를 잃어버린다. 명예나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서는 같다.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악취를 싫어하듯 악을 싫어하며 미인을 좋아하듯 선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간다. (대학) ㅇ 자신을 속인다는 것은 악을 버려야 함을 알면서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직 참되지 못한 것이다. 참되거나 참되지 않은 것은 나만 홀로 아는 것이므로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조심해서 그 기미를 살펴야 한다. ㅇ 만일 의리가 아홉 푼이 있지만 개인적인 뜻이 한 푼이라도 있으면 이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ㅇ 유 충정공이 사마 온공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실행할 것으로 ‘성실할 것’과 먼저 시작할 것으로 ‘망령되이 말하지 않을 것’을 들은 후 이를 매우 쉽게 여겼으나 물러나와 자신에게 맞춰보았더니 하루의 행동이 말한 것과 서로 배치되고 모순된 점이 많았다. 힘써 7년을 실행한 뒤에야 망령되어 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말과 행동, 겉과 속이 서로 맞았으며, 일을 당해도 마음이 평탄하여 늘 여유가 있었다. (*새기고 싶은 이야기)

 

성실은 사물의 끝이며 처음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실을 귀하게 여긴다. (중용)

맹자가 말했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길이고 성실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맹자) ㅇ 아직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선을 택하여야만 선을 밝힐 수 있고 반드시 굳게 지켜야만 선을 실천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사람의 길이다.

 

하늘에는 참된 이치가 있기 때문에 기의 작용이 쉬지 않고 일어나며, 사람에게는 참된 마음(實心)이 있기 때문에 배움이 틈이 없고 밝아지는 것이다. … 그러므로 주자는 ‘성실이란 성인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이 점을 유념하시기 바란다. (이이)

 

제6장 교기질(矯氣質, 기질을 바로잡음)

 

기질은 성실이 아니면 변화시킬 수 없다. 학문하는 데 성실하다면 반드시 치우친 기질을 바로잡아 본래 그러한 성품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장자(張子)는 “학문을 함으로써 얻는 큰 이익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라 하였다. 이 때문에 기질을 바로잡는 것이 성실의 다음이 된다. (이이)

 

굳은 선은 의롭고 곧고 결단력 있고 엄하고 굳세고 줄기차고 단단한 것이요, … 부드러운 선은 자애롭고 순하고 부드러운 것이요 …. (주자, 통서. 아래도 같음)

오직 중도를 지키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 // 그러므로 성인은 가르침을 세워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악을 바꾸고 스스로 중도에 이르게 한 뒤에 그친다.

 

세 가지 덕은, 첫째 바르고 곧음(正直), 둘째 굳게 다스림(剛克), 셋째 부드럽게 다스림(柔克)입니다. 평화로운 사람은 바름으로써 곧게 하고, 가라앉고 숨는 사람은 강경하게 다스리고, 높고 밝은 사람은 부드럽게 다스립니다. (주서홍범)

 

공자가 말했다.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은 서로 멀다.” (논어. 아래도 같음) ㅇ 기질의 성은 다른 점이 있지만 시초엔 멀지 않다. 착한 것, 악한 것에 각각 습관이 들어 멀어질 뿐이다. 기질이 다르므로 바로잡는 방법도 각각 다르다.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물었더니,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다. 하루 동안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세상이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일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 수많은 말을 다 걷어치우고, 단 하루만이라도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 보는 것이 옳겠다. 오직 단 하루. 단 하루를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나로부터 변할까? 이 유명한 구절을 읽은 수많은 이들 중에 단 하루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하면 그만인 일인데 남이 어쩌는지는 왜 그리 뚫어지게 보고 있나? 자기 극복을 통해 예를 실천하고 예를 통해 인을 실현하는 일. 쉽고 드물다.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ㅇ 예가 아닌 것이 개인적인 뜻이다. 이 개인적인 것을 극복하여 모든 것이 예에 복귀해야 비로소 인이다. ㅇ “자기를 극복하는 것은 모름지기 성품이 치우쳐서 극복하기 어려운 것에서부터 극복해나가야 한다.” ㅇ 주자에 의하면 극복해야 할 개인적인 뜻이란 다음 세 가지다. 1) 치우친 성질, 2) 귀, 눈, 입, 코 따위 감각기관의 욕망, 3) 남과 나 사이에서 시기하고 이기려는 욕망. 이것을 자세히 몸으로 깨달아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뜻이 있음을 느끼면 바로 극복해야 한다. ※ 또 다음과 같은 행동 요령을 제시한다.

 

안연이 “구체적인 조목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안연이 이를 듣고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ㅇ 주자가 말하길,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안에서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은 안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바깥을 대할 때 신중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안팎을 함께 닦아 나아가면 인을 행하는 데 남김없이 힘을 쓸 수 있다. ※ 모두 하지 말라는 것임에 유념할 것. 오직 멈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예가 아님은 인위 중에 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그 미세한 뿌리를 자세히 느끼고, 그 발호를 삼가고 독실해야 한다. 예가 아닌 것을 그만두는가 그만두지 않는가? 오직 이 털끝만 한 차이에서 갈라질 뿐. ㅇ 정자의 잠(箴). 시잠, 청잠, 언잠, 동잠(動箴) : 어려서부터 형성된 것(少成)은 마치 천성(天性)과 같고 습관은 마치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과 같다.

 

<역>에서 말했다. “산 아래 연못이 있는 것은 손괘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분노를 경계하고 욕심을 틀어막는다. (손괘상전) ㅇ 자기를 수양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덜어내야 하는 것은 오직 분노와 욕심이다.(정자) 성이 날 때 얼른 노여움을 잊어버리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살피면 바깥의 유혹은 미워할 만한 것이 못됨을 알 수 있고, 도의 경지에서 반은 넘어섰다고 생각할 수 있다. ㅇ 무엇으로 욕심을 막을 수 있겠는가? 생각(思)뿐이다.(정자) ㅇ 산의 모습을 보고 분노를 경계하고, 못의 모습을 보고 욕심을 막는다. 그러므로 구렁을 메우듯 욕심을 막고 산을 무너뜨리듯 분노를 가라앉힌다.(주자) 이는 기질을 바로잡는 방법이 자기 극복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이이)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고(審問), 신중히 생각하고(愼思), 분명하게 변별하며(明辯), 독실하게 행한다(篤行). (중용. 아래도 같음) ㅇ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폐하면 학문이 아니다.(정자)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운다면 능숙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을지언정 묻는다면 알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한다면 터득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변별하지 않을지언정 변별한다면 분명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한다면 독실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한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하고 남이 열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