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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

이른바 "멘붕"과 지나친 분노에 대해

이른바 "멘붕"과 지나친 분노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납득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해봅니다. 멘붕이다, 화난다, 삐뚤어질 거야, 이런 말을 사람들이 자주 하네요.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나도 멘붕, 나도 분노에 동참, 이러거나, "힐링"을 주기 위해 토닥토닥 위로하는 것이 대세인가 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첫 주일, 저희 목사님의 설교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써보면 다음과 같네요.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나서, 예수가 자신의 정치적 꿈을 실현해줄 수 없음을 결국 확인한 가룟 유다는, 이 멘붕, 혹은 절망 속에서, 자신의 꿈보다 은전 30냥이 더 중요한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겁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봐도 결국 안되더라, 하는 변명을 지렛대 삼아, 꿈과 이상에서 자기 이익과 입신의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더군요.

저는 사람들이 멘붕이나 분노를 굳이 강하게 드러낼 때 그 표현은 흔히 자기 변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이나 동료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기 정당화를 꾀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지요? 더 나쁜 경우 이런 말들은, 삐뚤어지기 위한, 자기 변질을 위한 변명으로 쓰이지는 않나요? 나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고, 너무도 분노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른 사람이 되겠어. 삐뚤어질 거야. 나는 현실주의자가 될 거야.

더 나쁜 경우, 아직 그 꿈과 이상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 않나요? 넌 나처럼 제대로 좌절하고 분노해보지 않아서 모른다며, 그러니 그 모양 그 꼴로 여전히 꿈이나 먹고 산다며, 현실을 모른다며, 정치를 모른다며, 순진해 빠졌다며, 권력과 돈의 힘과 쓸모를 모르는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이런 저의 표현이 좀 과하겠지만, 소소한 현실 속에서도 많이 목격되는 모습들입니다. 많이들 그런 절차를 통해 변해가더군요. 변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런 식의 변화는 비겁하므로 변질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왠만하면 멘붕하거나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속으로 삭일 수 있는 건 삭이기도 하는, 힘도 기릅시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나 어떤 상황이 자신의 심리적 그릇에 다 담기지 않아 멘붕이 올 수도 있고, 그걸 안에서만 삭일 수 없어 분노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건없는 공감과 위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멘붕과 분노를 그렇게까지 표현하는 자신이, 혹시 어떤 변명이나 자기 정당성을 만들어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절망을 기회로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