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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제4장 인간세(人間世) 중 :: 세상에 맞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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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 第四 人間世 中

공자와 안회의 문답 - 세상에 맞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장자] 이현주, 오강남 | 인문학서당 모임 | 서형원 | 2012.10.9

 

불의에 맞서야겠는가? 무언가 바로잡아야겠는가? 사회든, 직장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바로잡을 일은 많다. 잠자코 있을 수 없다면 어떻게 맞설 것인가? 흔히 말하듯, 맞서려는 의지만으로 정의롭고 가치 있는가? 장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자신이 옳다고 자위하는 것으로 자위하다 해를 당할 뿐이다. 능란한 방법들을 동원할 것인가? 그것도 충분치 않다. 재주만 부리다가 짓눌리거나 동화되기 십상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 내가 무언가를 해낸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곧 무언가를 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요약[각주:1]

ㅇ 안회가 위나라에 가고자 스승 공자의 뜻을 묻는다. 위나라 임금은 행실이 제멋대로다. 백성을 함부로 죽여 주검이 늪의 잡초 더미 같다. 의원 집에 환자가 많듯 어지러운 나라를 찾아가라는 것이 스승을 말씀이니 가서 고치고 싶단다.

ㅇ 공자는 말린다. 가봐야 형벌이나 받을 거다. “옛날 지인은 먼저 자기를 세운 다음에 남을 세웠다네. 자기를 세우는 일도 미처 다하지 못했으면서 어느 겨를에 난폭한 사람의 소행을 간섭할 것인가?” 서로 헐어내리는 명(명예), 다투는 데 쓰는 지(지식)는 흉기다. 또한 남의 기분과 마음을 모르고 인의의 잣대를 난폭한 자 앞에서 늘어놓으면 남의 못난 점을 이용해 저 잘났음을 드러내는 것. 이는 남을 해치는 일이요, 자신도 반드시 해침을 받게 된다.

ㅇ 아무 말도 않으면 왕과 대신은 권세로 짓눌릴 것이다. 결국 그들에 동화될 것이며, 이를 군더더기라 한다.

ㅇ 신임을 얻지 못하고 말하다간 난폭한 자 앞에서 죽게 될 것이다. 걸에게 죽은 관용봉과 주에게 죽은 비간은 자기 몸을 닦아 백성을 보살펴 어루만졌지만, 임금은 이 때문에 이들을 요절냈다. 이들은 이름을 좋아한 자들이다. “이름과 실리라는 것이 성인들도 물리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자네야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자네의 방도는 무엇인가?

ㅇ 몸을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비워 애써 순일코자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된다. 안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겉으로 공손하게 몸을 숙이며, 무엇을 말 하든 옛 어른의 가르침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방법이 너무 많아 마땅치 않다. 죄는 없겠으나 거기 그칠 따름이지 어찌 남을 변화시키겠느냐?

ㅇ 저는 더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을 여쭙습니다. 재계(齋戒)하라. 저는 가난하여 술과 맛난 음식을 하지 못하니 이만하면 재계했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제사 지내는 재계요 심재(心齋)가 아니다. 심재가 무엇입니까? 자네는 뜻을 한 곳에 모으되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기라고 하는 것은 텅 비어 만물을 맞는다. 도는 다만 텅 빈 곳에 모으니 텅 빈 것이 곧 심재다.

ㅇ 제가 가르침을 받지 못했을 때는 회(안회)로 가득 차 있더니 이제 심재를 배우매 처음부터 회는 없었습니다. 이로써 텅 비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스승이 말하되, “다 이루었다. 내가 자네에게 말한다. 새장에 들어가서 마음껏 노닐되 이름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없도록 하여라. 받아들이거든 울고 받아들이지 않거든 그쳐라. 문도 담도 세우지 말고 한 곳에 머물러 무엇이든지 마지못해서(부득이할 때만) 하면 거의 이룰 수 있으리라.” “저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보라. 텅 빈 방이 밝은 빛을 낸다. 모든 좋은 일이 저곳에 머물러 있으니 그런데도 머물 곳에 머물지 않으면 이를 일러 앉아서 달린다고 한다.”

 

생각해보기

ㅇ 안회의 치열한 긍휼지심, 세상으로 나아가는 제자에 대한 공자의 지극한 사랑.

ㅇ 공자의 입을 빌려 의리와 명분을 비판. 폭군 앞에서 간하고 목숨을 내어 놓는 것 이상의 이야기. 마음을 비우지 않고 읽어나가기 힘들다. (이) 스스로 정의롭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참 힘겨운 이야기일 듯.

ㅇ 장자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은 바도 없으면서 남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는 마음을 품는 까닭을, 그가 명과 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가의 덕목?) 바로 이것이 덕을 무너뜨리고 남과 자신에게 재앙을 초래한다. 이름을 남기려는 마음이야말로 사람을 그르치는 근본 원인. 보이지 않는 뿌리와 드러난 꽃과 열매. (이)

ㅇ 상대방의 기분이나 마음과 통하려 하지 않고 인이니 의니 하는 덕목의 사슬을 휘두르는 일. 충신이라는 이름을 탐하고 죽임을 당한 신하들. (이) 명예, 지식, 올바름 그 자체를 가치로 여기고 있진 않은가? 섬세하게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올바름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지, 명예로운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명예로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건지 알아채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

ㅇ 왕과 대신들의 권세에 압도되어, “눈은 어리둥절 / 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 네 입은 핑계로 어물어물 / 네 태도는 쭈빗쭈빗 / 네 마음은 지당지당.” (오) 고치려고 했던 대상에 짓눌리거나 동화되어 평소 소신을 꺼내지도 못하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 꼭 폭력과 권위를 앞세우지 않아도 세상은, 조직은 늘 개인을 압도하는 데 의욕과 재주만으로 맞설 수 있겠는가?

ㅇ 고루하고 번잡스런 수단들의 문제가 아니다. 벌이야 안 받겠지. 수단으로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 지인(至人)은 무기(無己)라. 무심으로 사물에 응한다. (이)

ㅇ 이제 겨우 인의를 배우고 정치판에 뛰어든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 수기(修己)만으로 치인할 수 없다. 결국 남과 자신에게 재앙이 될 뿐. (오)

ㅇ 무엇이든 “마지못해서”, “부득이”한 일에만 : 장자에서 매우 문제적인 표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

ㅇ 장자의 목적은 한 가지. 우리의 교묘한 언설과 몸짓 그 깊은 곳에 숨은 명예와 이익을 향한 탐심을 드러내는 일. 그러니 심재하라. (이) 정치가들의 복잡 미묘한 마음, 특히 이들의 진정한 동기가 무어인지 절묘하게 묘사. (오)

ㅇ 바울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나를 완전히 잊고 남만을 생각하는 아가페 같은)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함부로 사회 참여니 정치 참여니 민족을 위해 나를 바친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간을 서늘하게 하는 이야기. 우리 자의식을 말끔히 비우고 진정으로 남을 위한 존재로 탈바꿈할 때 우리의 사회 참여가 이웃과 사회와 세계를 위해 진정으로 향내나는 산 제사가 될 수 있다.(오)[각주:2] 득도가 아니라 매순간, (무언가에 맞닥뜨리기 전에 우선) 자의식 비우기.

ㅇ 심재(心齋) : 마음 굶김. the fasting of the mind. 도가 들어오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 마음이 가난한 자여. (오)

ㅇ 장자는 정치 참여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간디. “종교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하는 사람은 종교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자서전) (오)

ㅇ 심재하라. 그러고는 무엇을 해도 좋다. (이)

ㅇ 이제 비로소 스승은 제자를 위나라에 보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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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현주 “장자산책”의 번역을 인용하거나 요약하고 약간 수정. [본문으로]
  2. 오강남이 이 부분에 나눠 단 작은 제목들이 재미있다. “독재에 항거하기”, “섣불리 덤빌 수 없다”, “정치적 준비 태세”, “참된 준비 ― 마음 굶김(心齋)”, “심재할 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