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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출판::

2006년 지방선거와 여성 -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여세연 2005.5)

2006년 지방선거와 여성 ―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서형원·초록정치연대 간사 / 2005년 5월 5일 여세연 소식지 원고



“차라리 내가 하겠다.”

의정감시단에 참여해 지방의회를 방청한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다. 거의 예외가 없다. 광역이든 기초든 마찬가지다. 몇 천억에서 몇 조에 달하는 예산을 지방의원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몽땅 바꿔!”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바뀔까?

감시단은 모두 여성이다. 남자들은? 동네에 안 계신다. 혹시 의원들을 만나도 의회 밖, 그러니까 식당이나 술집에서 만난다.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으니까. 이 분들이 의회를 바꾸는 데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의회 물갈이는 당연히 여성의 몫. 그런데 보일 듯 보일 듯 하는 여성들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쩐 일일까?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 필자는 남자지만 옆에서 지켜만 봐도 가슴 답답한 복잡한 일이다. 아이는 어쩌지? 반대는 안 한다던 남편은 왜 이리 냉랭하지? 시댁엔 말도 꺼내기 겁나. 동네 사람들은 또 뭐라 그럴까? 모 여성후보는 사생활에 관해 엉뚱한 헛소문이 돌아 곤욕을 치렀다는데, 나는 혹시…? 사정이야 물론 각자 다르지만, 남자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온갖 일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게 여성후보다.

여성들이 지역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말로만 하자고 할 게 아니라 여성의 불리함을 넘어설 수 있는 진짜 뒷받침,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필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그래 맞다’라며 맞장구를 치는 걸 봐왔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여성이, 초록정치야말로 여성이 주력이 될 거라고 믿어왔다.
왜 여성인가? 초록정치의 입장에서 왜 특히 여성인가?

그것은 초록정치가 지역정치 참여를 중앙정치의 부속품이나 국회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인의 참여로 지역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초록의 지역정치운동이다. 지역의 생활인이 여성이라는 데 특별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여성주의 정치운동은 가부장 정치, 국가주의 정치를 극복하려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생활인의 지역정치 참여에 착목하는 초록정치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여성의 정치참여는 경쟁, 물질적 성장, 전쟁, 차별과 배제가 지배하는 질서에 여성들이 더 참여하는 것을 넘어 생명, 평화, 풀뿌리, 성평등, 다양성 등 초록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제가 생물학적 여성들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해온 기성의 가치와 질서를 성찰한다면, 여성 정치운동은 이 질서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후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필자가 알게 된 예비후보들 거의 모두가 남성들이다. 초록정치연대가 여성의 지방자치 참여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는가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한 첫 순간이 바로 행동하기에 가장 좋을 때. 여성 지방자치 교육을 위한 수요조사에 바로 들어가기로 했다.

희망적인 소식은 많다. 전북 부안의 여성들은 중앙의 부당한 정책과 못난 지방자치 현실로 모진 고초를 겪었다. 지금 부안 사람들은 의정참여단을 꾸린 여성들을 중심으로 2006년 선거에 여성이 대거 참여하도록 할 방안을 찾고 있다. 지역 여성단체들은 기성정당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여성 당선자를 만들어내 지역정치의 판을 변화시킨다는 목표로 독자적으로, 혹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수준 높은 지방자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참여는 해야겠는데….” 망설이는 몇몇 여성들을 알고 있다. 정말이지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가부장 정치에 기대지 않고 여성 자신의 힘으로 지역정치를 바꾸려는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역량, 정책과 비전, 희망을 주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게 먼저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시스템을 만들면 용기는 뒤따라 올 것이다. 마을과 세상을 바꾸는 풀뿌리 정치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