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부터의 거리
서형원 / 환경운동연합 평화운동 담당
내 책상 위에 녹슨 쇳덩어리 두 개가 놓였다. 에이텐이라는 폭격기에서 발사된 기총 사격탄이라고 한다. 10센티미터가 채 안 돼 보이는 길이에 무게가 제법 나가는 놈들이다. 지난 일요일 매향리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물건이다.
이 흉측한 물건을 전쟁 연습삼아 발사한 비행기에도 사람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탄알을 만들었을 것이며, 아마도 미국 정부가 그 대금을 지불했을 터이다. 세금을 낸 미국인들은 그 돈이 이 흉측한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태평양 건너 작은 나라의 작은 마을 작은 섬에 하루에도 수 없이 퍼부어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반세기동안 폭격의 굉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아마 설명한다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 날 물 빠진 갯벌을 첨벙대며 찾아 간 매향리 앞 농섬엔 사람대신 크고 작은 포탄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섬 옆구리엔 1 톤 가까운 포탄들도 무수했다. 한 때는 숲이 하도 울창했어서 농(濃)섬, 그러니까 우거진 섬이고 불렸다는 그곳엔 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 없었다. 빙 둘러 쌓여있는 돌멩이들마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원래 작은 섬에는 뾰족한 돌이 없다. 바닷물에 쓸려 둥글게 다듬어져야 마땅했을 돌멩이들이었다.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주민대책위원회’의 전만규 위원장은 쉼 없는 폭격으로 섬이 부서지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 모양이라고 했다.
날이 서 있기는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 위원장은 폭격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지고 거칠어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창문 밖 먼발치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도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는데 말이다. 폭격은 공휴일과 미국 국경일을 제외한 날이면 아침 아홉시부터 밤 10시까지, 때로는 그 이후까지 계속된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듯 충격을 받게되는, 그 공포에 시달리다 못해 익숙해지자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투성이가 됐겠는가?
돌아와 몇몇이 함께 식사를 했다. 한 학생은 평소 무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에이텐이 어떤 비행기며 그 보다 작은 에프 몇이니 하는 비행기는 또 어떻다는 꼼꼼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 쇳덩이들이 멋진 사진이나 모형 비행기로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살상하고 땅을 초토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범한 사실을, 많은 학생들이 실감치 못할 법도 하다.
평화는 참 멀리도 있다. 미합중국 시민으로 세금을 냈을 한 농부에서 매향리에 나뒹구는 포탄 사이의 거리만큼 멀다. 어린 초등학생의 책상을 장식한 멋진 전폭기 모델에서 민가를 덮친 포탄에 다리를 잃은 중동 어느 마을 가난한 학생의 운명까지의 간격만큼이나 멀다. 세련된 사무용 책상에 고성능 컴퓨터가 놓여있는 내 자리에서 매향리까지는 혹은 평화까지는 얼마만한 거리일까?
인권이든 생태계든 평화든, 원인과 결과의 거리, 혹은 사람들과 현장의 거리를 좁혀야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종종 느낀다. 우리 생활과 그 생활의 결과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내가 신은 운동화에서 지구 저편 어느 나라 신발공장에서 호흡조차 곤란한 공기 속에 시달리는 여덟 살 노동자의 삶을 떠올릴 수 없고, 내가 탄 승용차의 안락함에서 수 백년에 걸쳐 지구기후를 교란할 이산화탄소의 작용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교통전쟁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전쟁으로 여겨지는 도시에서 한반도 허리에서 계속되고 있는 팽팽한 군사적 긴장을 떠올릴 일도 별로 없으며, 그 긴장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다른 소중한 일에 쓰여야 할 엄청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굳이 의식할 일도 없다.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운동화와 승용차와 도시를 위해 대신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매향리를 떠올릴 일은 더구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거리감이 전쟁을 유지하게 한다. 그 거리감을 없애고 싶다. 책상 위에 새로 놓인 에이텐 기총탄이 매향리와 나를 조금은 더 가깝게 할 것 같다.
(잎새통문 2001.6)
서형원 / 환경운동연합 평화운동 담당
내 책상 위에 녹슨 쇳덩어리 두 개가 놓였다. 에이텐이라는 폭격기에서 발사된 기총 사격탄이라고 한다. 10센티미터가 채 안 돼 보이는 길이에 무게가 제법 나가는 놈들이다. 지난 일요일 매향리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물건이다.
이 흉측한 물건을 전쟁 연습삼아 발사한 비행기에도 사람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탄알을 만들었을 것이며, 아마도 미국 정부가 그 대금을 지불했을 터이다. 세금을 낸 미국인들은 그 돈이 이 흉측한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태평양 건너 작은 나라의 작은 마을 작은 섬에 하루에도 수 없이 퍼부어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반세기동안 폭격의 굉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아마 설명한다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 날 물 빠진 갯벌을 첨벙대며 찾아 간 매향리 앞 농섬엔 사람대신 크고 작은 포탄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섬 옆구리엔 1 톤 가까운 포탄들도 무수했다. 한 때는 숲이 하도 울창했어서 농(濃)섬, 그러니까 우거진 섬이고 불렸다는 그곳엔 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 없었다. 빙 둘러 쌓여있는 돌멩이들마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원래 작은 섬에는 뾰족한 돌이 없다. 바닷물에 쓸려 둥글게 다듬어져야 마땅했을 돌멩이들이었다.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주민대책위원회’의 전만규 위원장은 쉼 없는 폭격으로 섬이 부서지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 모양이라고 했다.
날이 서 있기는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 위원장은 폭격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지고 거칠어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창문 밖 먼발치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도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는데 말이다. 폭격은 공휴일과 미국 국경일을 제외한 날이면 아침 아홉시부터 밤 10시까지, 때로는 그 이후까지 계속된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듯 충격을 받게되는, 그 공포에 시달리다 못해 익숙해지자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투성이가 됐겠는가?
돌아와 몇몇이 함께 식사를 했다. 한 학생은 평소 무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에이텐이 어떤 비행기며 그 보다 작은 에프 몇이니 하는 비행기는 또 어떻다는 꼼꼼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 쇳덩이들이 멋진 사진이나 모형 비행기로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살상하고 땅을 초토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범한 사실을, 많은 학생들이 실감치 못할 법도 하다.
평화는 참 멀리도 있다. 미합중국 시민으로 세금을 냈을 한 농부에서 매향리에 나뒹구는 포탄 사이의 거리만큼 멀다. 어린 초등학생의 책상을 장식한 멋진 전폭기 모델에서 민가를 덮친 포탄에 다리를 잃은 중동 어느 마을 가난한 학생의 운명까지의 간격만큼이나 멀다. 세련된 사무용 책상에 고성능 컴퓨터가 놓여있는 내 자리에서 매향리까지는 혹은 평화까지는 얼마만한 거리일까?
인권이든 생태계든 평화든, 원인과 결과의 거리, 혹은 사람들과 현장의 거리를 좁혀야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종종 느낀다. 우리 생활과 그 생활의 결과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내가 신은 운동화에서 지구 저편 어느 나라 신발공장에서 호흡조차 곤란한 공기 속에 시달리는 여덟 살 노동자의 삶을 떠올릴 수 없고, 내가 탄 승용차의 안락함에서 수 백년에 걸쳐 지구기후를 교란할 이산화탄소의 작용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교통전쟁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전쟁으로 여겨지는 도시에서 한반도 허리에서 계속되고 있는 팽팽한 군사적 긴장을 떠올릴 일도 별로 없으며, 그 긴장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다른 소중한 일에 쓰여야 할 엄청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굳이 의식할 일도 없다.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운동화와 승용차와 도시를 위해 대신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매향리를 떠올릴 일은 더구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거리감이 전쟁을 유지하게 한다. 그 거리감을 없애고 싶다. 책상 위에 새로 놓인 에이텐 기총탄이 매향리와 나를 조금은 더 가깝게 할 것 같다.
(잎새통문 2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