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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블로그04.9.24]<서구세계의 성장 - 새로운 경제사>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서형원
2010. 2. 11. 00:19
서구세계의 성장 - 새로운 경제사
더글러스 C. 노스, 로버트 폴 토머스 / 이상호 역 / 자유기업센터 / 1999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 - A New Economic History
Douglass C. North and Robert Paul Thomas (Cambridge Univ., 1973)
막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경훈이란 놈이 갑자기 옛 친구들을 불러모아 공부(세미나!)를 하자고 선동을 하더니, 나로선 처음엔 참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주제는 거창하여 한국 사회에서 시장(market)이 갖는 의미라는 걸 파보자는 거였다.
결국 대학시절을 때로는 철부지 동무들처럼, 혈서를 쓴 동지들처럼, 지긋지긋한 하숙동료처럼 함께 붙어다니던 옛 친구들이 거의 십오년 만에 다시 모여 공부를 하게된 것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그냥 내가 썼던 글 몇 개 중에서 시장(주의)에 대한 언급(욕)이 들어있는 글을 브리핑했고, 처음으로 내 주제를 갖고 경제학자(라는 인증을 딴 놈)와 토론을 하는 참이라 뭐라 답변도 못하고 헤매고 말았다. 그 놈 왈, "시장(경제학)이 왜 자연을 무한한 것으로 가정한다는 거냐?" 나로선 참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라 경제학을 공부한 놈이 경제학이 안 그렇다는 데 별 할 말이 없었던 것이었다. 쩝쩝...
내일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이야기하기로 한 책이 위의 책이다. 뭐 자세히 소개할 생각은 없다. 이른바 신제도학파라는 유파의 학자가 쓴 책인데, 이쪽에 관해서는 워낙 아는 바가 없어서 맥락을 소개하기 힘들다. 하여간 "제도가 중요해"라고 말하는 제도학파가 있고, 그 주장을 신고전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 신제도학파라는데, 맞는지도 모르겠고, 맞다고 해도 뭔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된 일인지 역자도 이 책의 이론사적 의의 따위는 언급하지 않고 책 내용만 요약하고 말았다. 생태경제학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에 관심을 가지는 경제학자들이 제도학파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가진 단서의 전부다.
뭐 이제 앞부문 조금 읽었을 뿐이지만, 한가지만 기록해 둔다. 늘 그렇듯, 세부 논리보다는 전제와 철학에 관한 뜬구름 잡기, 라고 해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수익률과 사회 수익률을 일치시키는 것"
저자에 의하면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사회발전과 등치하는) 경제성장의 조건이다. 개인들의 이기적 행동이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사회발전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얻는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일치되도록 하는 효율적인 경제조직(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제도란 무임승차를 공짜로 남의 노력에서 혜택을 얻거나 비용지불 없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며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배제할 수 있는 소유권 제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개인들이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행위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다. (경제학의 인간은 개인에게 득이 안 되고 사회적으로만 의미 있는 일은 안 하니까 그런 경우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어떤 집이 정원을 멋지게 가꿨는데 그로 인해 동네가 아름다워져 (나아가 그 집 때문에 동네 집값이 올라)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봤다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얻은 이익에 합당한 대가를 (아마도 세금을 통해) 지불해야 하고 정원을 가꾼 사람은 (자치단체의 보조금 따위를 통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사회(동네)와 자신에게 모두 유익한 정원 가꾸기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정원 가꾼 이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판매한 셈이 되기 때문에 무소유(공짜)였던 환경이 재산이 되었다. 그래서 소유권 제도라는 거다.)
반대로, 상류에 공장을 지어 폐수를 방류한 사람 때문에 아랫동네 고기잡이가 피해를 봤다면, 마땅히 공장 주인은 고기잡이에게 피해를 보상해야 할 터이다. 직접 보상할 수도 있고 (팔당의 경우처럼) 세금을 내고 나라가 대신 지원해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보상을 하고도 충분히 자기에게 이익이 될만 해야 상류의 공장을 짓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공장 건설은 억제될 것이다. 보상이 없는 경우를 살펴보면, 사회(강 상하류동네)는 공장 주인이 얻은 이익에서 폐수로 인한 피해를 제외한 만큼의 이익(마이너스인 경우엔 피해가 되겠지)을 얻게 되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보다 큰 이익을 보게 되고, 따라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창궐하게 될 터이다. 그러니 공짜였던 강의 이용에 적절한 비용을 부과하여 반사회적인 경제행위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흠흠... 왜 이걸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한 김에.
저자에 의하면, 새로운 제도는 그 제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그에 따른 개인들의 편익이 클 것으로 기대될 때문 생겨나는 데, 정부(라는 제도)가 소유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떠맡는 것은 정부가 민간부문의 자율적인 집단보다 더 효율적으로(=낮은 비용으로)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정부가 필요해졌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정부는 재정수입이라는 고유의 이해관계가 있어서 성장을 촉진하기보다 가로막는 소유권을 보호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생산적인 제도체계가 출현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나는 평소에 소유권과 관련한 정부의 노력, 그리고 재산을 둘러싼 다툼을 규율하는 법제도는 "기본적으로" 재산권의 침해를 방지하는 데에, 다시 말해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에, 또 다시 말해 가진 사람들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이번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인식과 저자의 인식은 완전히 충돌하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한 기본적 기능에 더해, 효율적인 재산관계를 설정하여 (재산을 가진) 너와 나와 우리가 모두 이익이 되는 제도를 창출하라고, 재산을 가진 (그래서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항상 요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게 정말로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재산을 가진 만큼 보호받고 그만큼 더 벌수 있게 한다는 얘기고, 여기서의 사회라는 것도 일인일표의 논리가 아니라 일달러일표의 논리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되겠다.
그리고 이 사람은 집요하게 인구증가를 경제성장, 나아가 사회발전의 지배적인 원인으로 이야기하는데, 왜 인구증가에는 다른 요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 아직 더 읽어봐야 할 일이지만...
뻔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원래 생각하려고 했던 주제로 돌아가서...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면 사회가 진보한다는 거... 이거 생각해보고 싶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다.
오늘 지하철을 타면서 불현듯...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음치가수로 알려진 서민정 씨가 콘서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하철 안과 밖에 광고로 도배를 했다. 태진미디어라는 업체가 서민정 씨를 통해 뭔가 이벤트를 하려고 하는 중이다. 사실은 그 공연이 대학로 질러홀이라는 데서 열리고, 그 공연장에서 다음달 초에 솔바람의 정기공연이 열린다. 솔바람의 공연과 서민정의 공연은 어떤 것이 과연 더 사회발전에 기여할까? ^^;;
에에... 서민정 씨가 그 코믹하고도 자신만만한 노래로 국민의 구겨진 마음을 펴는 데 기여했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군.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서민정 씨가 그렇게 인기일 테니...
하여간 만약에, 쌈짓돈 내고 없는 짬 내어 환경이니 평화니 동네 살리기니 하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일년에도 수십번씩 공연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시민들의 모임인 솔바람이 일년에 한번 여는 정기공연이 서민정 콘서트보다 사실은 사회적으로 더 유익한 일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왜 돈은 서민정 콘서트를 광고하는 데만 투입되는 걸까? 그 일로 태진미디어라는 노래방 반주기 회사(맞나?)가 장사가 잘 되면 사회적으로 유익한가? 자원이 그쪽으로 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아니, 사실 묻고 싶은 것은, 정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개인에게도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고 그래서 자원이 자동으로 그쪽에 몰리는, 그런 멋진 일이 일어날까? 세심한 정책이나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발휘하지 않고도, (소유권) 제도을 잘 설정하면 자동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이 일어나는 그 날이 과연 올까???
선한 의지의 고양이나 선한 정책 따위의 (경제학이 협오하는) 개입이 없이, 잘 설계된 제도체계에 따라 자동으로 사회적으로 선한 일이 마구 일어나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흠흠... 경제학자들은 시장 신봉자든 제도주의자든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 아냐?
에구... 낼 이런 얘기했다고 또 박살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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