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와 출판::
부림천에 꿈틀거리는 봄 (2000.12)
서형원
2010. 2. 10. 21:05
부림천에 꿈틀거리는 봄
백로 한 가족이 부림천에서 가을을 지내고 남쪽으로 떠난 겨울의 뒷물이다. 짬짬이 아이들이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뛰어들곤 한다. 어젠 어느 집 누렁이 한 마리가 그 갯가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관악산에서 흘러 내려 과천 부림동 우리 동네 앞을 흐르는 개천 이름은 부림천, 서울로 흘러가면 양재천이라고 부르는 그 개천이다. 작년 여름이 끝날쯤이었나? 갑자기 무슨 공사를 하는 듯하더니 콘크리트를 벗겨내고 이것저것 식물을 심었다. 돌덩이, 통나무도 일부러 갖다놓고 물이 구불구불 흐르도록 재주를 부려 놓았다.
한 삼백미터쯤 그렇게 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백로 한 가족이 와서 지내게 된 것이다. 그 백로 가족은 곧 몇몇 일간지에 컬러 화보로 실려 유명해졌다. 한 이름난 논설가는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 운운하며 감격해마지 않는 글을 실었다.
나는 실은 시큰둥했다. 대체 뭐 그리 대견스럽냔 말이다. 죽은 하천을 ‘자연형’으로 바꾼다고 호들갑 떤 그곳 바로 위 물줄기는 주차장으로 복개돼 있고 그 가지천은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도로 밑을 지나 간신히 흐르는 부림천을 삼백미터쯤 인간의 힘으로 복구한대야 뭣이 달라지겠는가?
겨울이 되고, 백로 가족은 떠나고, 부림천은 영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혹시 궁금해서 집에 들어갈 때는 꼭 부림천 낮은 다리를 건너며 한번씩 살펴보곤 한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 느낌도 없다. 늦가을 심어 논 식물들은 앙상하고 개천은 얼지도 않는 것 같다. 가끔 비닐 봉다리나 못쓰는 물건들이 버려져 있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도무지 봄이 오더라도 뭔 변화가 있을지 싶다.
그런데도 가끔 그 물에 첨벙대는 아이들이 있다. 그 물로 목을 축이는 누렁이도 있었다. 가끔 못 보던 새가 보이기도 한다. 을씨년스런 그 개천 어디에 무슨 변화가 있는 걸까? 혹시 그 땅 밑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곧 올 봄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어른의 대열에 끼게 된 것에 내심 안도하고 있는 우둔하고 약아빠진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게된, 아이들은 느끼고 있고 동네 개들이 먼저 아는, 뭔가가 있는 걸까?
아무튼 봄은 올 터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설레는 봄이든 권좌에 오른 이의 고목에 꽃피는 봄이든 실직자들의 한숨에 방구들 꺼지는 봄이든, 오긴 올 터이다. 이왕이면 가까이서 봄을 보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눈인사 나누는 부림천에서 이 겁나게 팍팍한 시절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찬란한 봄을 보고 싶다.
(2000.12. 여름내소식)
백로 한 가족이 부림천에서 가을을 지내고 남쪽으로 떠난 겨울의 뒷물이다. 짬짬이 아이들이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뛰어들곤 한다. 어젠 어느 집 누렁이 한 마리가 그 갯가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관악산에서 흘러 내려 과천 부림동 우리 동네 앞을 흐르는 개천 이름은 부림천, 서울로 흘러가면 양재천이라고 부르는 그 개천이다. 작년 여름이 끝날쯤이었나? 갑자기 무슨 공사를 하는 듯하더니 콘크리트를 벗겨내고 이것저것 식물을 심었다. 돌덩이, 통나무도 일부러 갖다놓고 물이 구불구불 흐르도록 재주를 부려 놓았다.
한 삼백미터쯤 그렇게 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백로 한 가족이 와서 지내게 된 것이다. 그 백로 가족은 곧 몇몇 일간지에 컬러 화보로 실려 유명해졌다. 한 이름난 논설가는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 운운하며 감격해마지 않는 글을 실었다.
나는 실은 시큰둥했다. 대체 뭐 그리 대견스럽냔 말이다. 죽은 하천을 ‘자연형’으로 바꾼다고 호들갑 떤 그곳 바로 위 물줄기는 주차장으로 복개돼 있고 그 가지천은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도로 밑을 지나 간신히 흐르는 부림천을 삼백미터쯤 인간의 힘으로 복구한대야 뭣이 달라지겠는가?
겨울이 되고, 백로 가족은 떠나고, 부림천은 영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혹시 궁금해서 집에 들어갈 때는 꼭 부림천 낮은 다리를 건너며 한번씩 살펴보곤 한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 느낌도 없다. 늦가을 심어 논 식물들은 앙상하고 개천은 얼지도 않는 것 같다. 가끔 비닐 봉다리나 못쓰는 물건들이 버려져 있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도무지 봄이 오더라도 뭔 변화가 있을지 싶다.
그런데도 가끔 그 물에 첨벙대는 아이들이 있다. 그 물로 목을 축이는 누렁이도 있었다. 가끔 못 보던 새가 보이기도 한다. 을씨년스런 그 개천 어디에 무슨 변화가 있는 걸까? 혹시 그 땅 밑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곧 올 봄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어른의 대열에 끼게 된 것에 내심 안도하고 있는 우둔하고 약아빠진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게된, 아이들은 느끼고 있고 동네 개들이 먼저 아는, 뭔가가 있는 걸까?
아무튼 봄은 올 터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설레는 봄이든 권좌에 오른 이의 고목에 꽃피는 봄이든 실직자들의 한숨에 방구들 꺼지는 봄이든, 오긴 올 터이다. 이왕이면 가까이서 봄을 보고 싶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눈인사 나누는 부림천에서 이 겁나게 팍팍한 시절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찬란한 봄을 보고 싶다.
(2000.12. 여름내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