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와 출판::
넘쳐나는 쌀, 논 만드는 새만금 간척(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과 간척사업, 2001.10)
서형원
2010. 2. 10. 00:22
넘쳐나는 쌀, 논 만드는 새만금 간척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환경조사팀장)
"함께사는길",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등 기고. (2001년 10월)
남는 쌀보다 남는 세금이 더 걱정?
쌀이 남아 걱정이란다. 한 톨 밥알이라도 남길라치면 지엄한 불호령이 떨어지곤 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웬 팔자에 없던 호강인가? 그런데도 정부는 국고를 털어 논을 만들고 있다. 국민 한 가구 당 50만원, 전북 도민 한 가구 당 약 13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할 새만금 간척사업이 그것이다. 마치 남아도는 세금이 더 골치 아프다는 듯 말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는 정말 아무 대책이 없는가?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답해보기로 한다.
상황은 이렇다. 올 연말 쌀 재고는 1,100만석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한 재고 규모(570만석)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농협이 의뢰한 한 연구는 이 때문에 쌀의 시장가격이 14.3% 하락하고 전체 쌀 농가의 소득이 1조원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잉공급 구조와 간척사업
문제는 올 한해가 아니다.
쌀 공급과잉은 이미 구조화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식탁에서 육류와 밀, 해산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민 일인당 쌀 소비는 1980년 이후 30% 가까이 줄었다. 국내 쌀 생산은 늘지 않았지만 쌀 수입이 증가해 공급 증가를 부추겼다. 이 두 추세 모두 당분간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앞으로는 대형 국책 간척사업이 쌀의 과잉공급 구조를 극단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전농이 공급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수입쌀은 과거 5년 간 연평균 8만여 톤이었는데, 새만금 간척지 한 곳에서만 연간 14만 톤의 쌀이 쏟아져 나올 계획이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영산강 3단계, 시화지구, 화옹지구 등도 조만간 각각 수만 톤씩 쌀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결국 쌀 공급 과잉은 수매 확대나 북한 쌀 보내기 같은 땜질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가? 쌀 수입이다 간척사업이다 해서 공급이 마냥 증가하는 것을 방치만 할 순 없지 않을까? 사실 정부는 아주 근본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소 농민을 농업에서 퇴출시키는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이 그것이다. 간척사업을 지속하고 쌀 수입을 확대하면서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정부의 해법은 중소 농민의 퇴출
정부는 농업경영의 규모를 키워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형 농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광활한 규모의 농지를 제공하는 국책 간척사업은 이러한 정책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우를 보자. 정부 계획대로 평당 7만원에 달하는 조성단가를 감당하고 6헥타르(18,150평) 이상의 농지를 매입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민은 거의 없다. 12억7천만원을 줘야 새만금 농지의 가장 작은 단위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논은 헬기 타고 농약을 뿌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비를 절약할 수 있는 대기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 새만금 간척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엄격한 규제는 전북 중소 농민의 퇴출을 겨냥하고 있다. 환경부와 전문가들이 썩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새만금 간척호수를 살리는 길은 새만금 유역, 즉 전북 일대에서 비료와 축산분뇨 등을 비상식적인 수준까지 통제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판로도 어려운 판에 재벌 농사꾼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료 줄이고 가축 줄이라는 새만금 규제에 시달려야 할 운명이다.
단적으로 말해, 넘쳐나는 쌀과 대형 간척사업의 모순은 자기 땅을 아끼고 가꾸며 살아가는 소농의 몰락을 통해 해소될 것이다. 몰락한 농민의 운명은? 간척지를 차지한 기업형 농장의 농업노동자가 거기서 충원될 것이다. 이것이 농정 당국자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미래의 농업이다.
자립적 소농 - 농업과 환경의 미래
나라 밖에서는 신자유주의 개방 압력이라는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의 기반을 닦는 거대한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농업의 기반인 중소 농민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으며 그 핵심에 새만금 간척사업이 있다. 쌀 재고 과잉 사태는 농업구조조정을 공공연하게 추진할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정부가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과연 이것이 쌀 생산의 어느 부분, 농민의 어느 계층을 포기한다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립적이고 건실한 소농을 우리 농업의 주류이자 기반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농민운동의 관심일 뿐 아니라 환경운동의 입장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기 땅을 아끼고 가꾸는 소농들이야말로 생태농업의 담당 계층이며 생태농업은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의 경제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국제 쌀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는 우리 농업경영의 미래 또한 생태농업에 있다. 생태 농업은 즉 고부가가치 농업이기 때문이다. 농민과 환경운동가가 함께 설계하고 실현해야 할 대안의 대략적인 방향이 여기에 있다.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환경조사팀장)
"함께사는길",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등 기고. (2001년 10월)
남는 쌀보다 남는 세금이 더 걱정?
쌀이 남아 걱정이란다. 한 톨 밥알이라도 남길라치면 지엄한 불호령이 떨어지곤 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웬 팔자에 없던 호강인가? 그런데도 정부는 국고를 털어 논을 만들고 있다. 국민 한 가구 당 50만원, 전북 도민 한 가구 당 약 13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할 새만금 간척사업이 그것이다. 마치 남아도는 세금이 더 골치 아프다는 듯 말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는 정말 아무 대책이 없는가?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답해보기로 한다.
상황은 이렇다. 올 연말 쌀 재고는 1,100만석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한 재고 규모(570만석)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농협이 의뢰한 한 연구는 이 때문에 쌀의 시장가격이 14.3% 하락하고 전체 쌀 농가의 소득이 1조원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잉공급 구조와 간척사업
문제는 올 한해가 아니다.
쌀 공급과잉은 이미 구조화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식탁에서 육류와 밀, 해산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민 일인당 쌀 소비는 1980년 이후 30% 가까이 줄었다. 국내 쌀 생산은 늘지 않았지만 쌀 수입이 증가해 공급 증가를 부추겼다. 이 두 추세 모두 당분간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앞으로는 대형 국책 간척사업이 쌀의 과잉공급 구조를 극단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전농이 공급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수입쌀은 과거 5년 간 연평균 8만여 톤이었는데, 새만금 간척지 한 곳에서만 연간 14만 톤의 쌀이 쏟아져 나올 계획이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영산강 3단계, 시화지구, 화옹지구 등도 조만간 각각 수만 톤씩 쌀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결국 쌀 공급 과잉은 수매 확대나 북한 쌀 보내기 같은 땜질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가? 쌀 수입이다 간척사업이다 해서 공급이 마냥 증가하는 것을 방치만 할 순 없지 않을까? 사실 정부는 아주 근본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소 농민을 농업에서 퇴출시키는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이 그것이다. 간척사업을 지속하고 쌀 수입을 확대하면서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정부의 해법은 중소 농민의 퇴출
정부는 농업경영의 규모를 키워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형 농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광활한 규모의 농지를 제공하는 국책 간척사업은 이러한 정책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우를 보자. 정부 계획대로 평당 7만원에 달하는 조성단가를 감당하고 6헥타르(18,150평) 이상의 농지를 매입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민은 거의 없다. 12억7천만원을 줘야 새만금 농지의 가장 작은 단위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논은 헬기 타고 농약을 뿌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비를 절약할 수 있는 대기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 새만금 간척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엄격한 규제는 전북 중소 농민의 퇴출을 겨냥하고 있다. 환경부와 전문가들이 썩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새만금 간척호수를 살리는 길은 새만금 유역, 즉 전북 일대에서 비료와 축산분뇨 등을 비상식적인 수준까지 통제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판로도 어려운 판에 재벌 농사꾼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료 줄이고 가축 줄이라는 새만금 규제에 시달려야 할 운명이다.
단적으로 말해, 넘쳐나는 쌀과 대형 간척사업의 모순은 자기 땅을 아끼고 가꾸며 살아가는 소농의 몰락을 통해 해소될 것이다. 몰락한 농민의 운명은? 간척지를 차지한 기업형 농장의 농업노동자가 거기서 충원될 것이다. 이것이 농정 당국자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미래의 농업이다.
자립적 소농 - 농업과 환경의 미래
나라 밖에서는 신자유주의 개방 압력이라는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농업구조조정의 기반을 닦는 거대한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농업의 기반인 중소 농민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으며 그 핵심에 새만금 간척사업이 있다. 쌀 재고 과잉 사태는 농업구조조정을 공공연하게 추진할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정부가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과연 이것이 쌀 생산의 어느 부분, 농민의 어느 계층을 포기한다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립적이고 건실한 소농을 우리 농업의 주류이자 기반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농민운동의 관심일 뿐 아니라 환경운동의 입장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기 땅을 아끼고 가꾸는 소농들이야말로 생태농업의 담당 계층이며 생태농업은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의 경제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국제 쌀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는 우리 농업경영의 미래 또한 생태농업에 있다. 생태 농업은 즉 고부가가치 농업이기 때문이다. 농민과 환경운동가가 함께 설계하고 실현해야 할 대안의 대략적인 방향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