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와 출판::

민주당의 오만 (2001.5)

서형원 2010. 2. 10. 00:17
민주당의 오만함은 어디서 오는가? / 민주당은 왜 오만한가? / 민주당이 오만한 이유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새만금특위 정책국장)

온갖 실정과 개혁 실패로 얼룩진 민주당 정권이 여전히 오만함의 극을 달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최근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 발표라는 직격탄을 얻어맞은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거듭되는 실정에 배신감을 곱씹어온 노동자, 농민, 교사, 서민, 그리고 모든 진보적 사회단체들은 이 오만함의 뒷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새만금 이야기에서 시작해보자. 25일 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사업 강행 방침은 무효다. 잘 알려진 대로 정부는 민간과 함께 구성한 ‘새만금 평가회의’의 결론을 따르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평가회의가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하는 결론을 내리자, 정부는 장관회의에서 서둘러 결정을 보기 위해 대통령이 아닌 정부차원의 결정을 건의했다고 평가회의 결론문서를 조작했다. 더구나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6.3퍼센트가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으며, 지금 강행하는 것에는 무려 83퍼센트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공개된 문서를 조작하고 압도적 국민여론을 묵살하면서까지 정부가 이 사업을 강행하려는 배경에는 민주당의 표 계산이 깔려 있다. 다음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라북도의 민심을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 새만금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속사정이다. 유례 없는 생태계 파괴와 5조원 이상의 혈세 낭비, 경제성과 수질 문제에 대한 무대책은 아마 3순위 정도로도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전라북도에서 얻을 약간의 표 때문에 국민의 83퍼센트가 반대하고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농민까지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바로 여기에 민주당의 오만 섞인 계산이 숨어 있다.

첫째 민주당의 셈법에 의하면 국민이 아무리 환경을 염려해도 득표에는 영향이 없다. 위기의 민주당으로서는 막연한 여론 따윈 희생하더라도 전라북도의 확실한 몇 표를 움켜쥐는 게 중요하며, 나머지 국민은 막상 선거가 닥치면 환경 따위를 투표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처럼 영악한 계산을 하고 있으니 환경단체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신경 쓸 턱이 없다.

민주당의 두 번째 계산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농민단체 등등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봐야 늘상 말에 그칠 뿐, 결국 선거에선 자신을 택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들이 설마 더 보수적인 야당에 표를 몰아줄 될 일을 하겠는가 하는 자신감이다.

이 땅의 진보세력들이여. 생각을 해보자. 개혁을 살리고, 노동자·농민을 살리고, 인권과 복지를 살리고, 새만금 뭇생명을 살릴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주 한겨레는 ‘김대중정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연재물을 통해 칼을 빼들었다. 더 이상 미련 두지 않겠다는 경고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 민주당은 오만덩어리다. 경고 정도로는 부족하다. 합법적으로 직장에 들어가는 노동자를 두들겨 패고, 농약투성이 수입농산물로 농업과 식탁을 파탄내고, 온 국민이 반대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피땀어린 혈세를 낭비하는 정권은 심판 받는다는 것을 주저 없이 보여줘야 한다.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를 심판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의 말뿐인 개혁과 끝없는 실정을 더 보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애당초 우리 환경단체들은 정치파벌간의 오십보 백보 차이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가장 나쁜 범죄가 살인이듯, 가장 흉악한 정치행태가 생명파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갯벌 한줌마다 꿈틀대는 수 만 개체의 생명을 살리고 여기 터잡고 사는 수만 명의 어민들이 삶의 터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는 망설임 없이 민주당과 싸울 것이다. 행여 우리에게 정치적 계산 따위를 강요하지 말라. 선거는 4년마다 오지만 사라진 갯벌은 다시 찾을 수 없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