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와 출판::
기후변화의 위협과 화석연료 이후의 선택 (99.7)
서형원
2010. 2. 10. 00:07
기후변화의 위협과 화석연료 이후의 선택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화려한 20세기를 가능하게 한 것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20세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지난 세기를 풍요와 발전의 시대라고 부른 대신 두 차례 세계대전과 이념갈등으로 얼룩진 ‘극단의 시대’라고 혹평했으며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20세기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거대 위험의 시대라고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가 막대한 물질적 부를 누린 시대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8억의 인구가 어디선가 굶주리고 있다고 해도 인류 전체로서는 분명히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있다.
무엇이 20세기를 떠받쳤는가? 20세기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석탄과 석유, 즉 화석연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의 끝과 끝을 기차로 이어주고 육중한 기계를 움직여 생산 규모의 한계를 깨뜨린 것이 석탄이었고, 오늘날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산·소비 단위로 만들고 있는 정보통신·교통 기술을 작동시키는 막대한 에너지도 결국 화석연료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는 에너지 소비의 약 8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 보자. 세상은 석유로 만든 물질로 가득 차 있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플라스틱 식기와 장난감, 비닐 포장과 전자제품 껍데기까지, 온통 석유로 만들어진 상품들이다. 수십억년을 진화한 지구 생태계도 이 물질들은 너무 낯설다. 이들을 분해하여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보낼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어쨌든,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제품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물질들보다 단단하고 가공하기 쉬우며, 무엇보다 화려하다. 20세기의 화려함은 화석연료로 인해 가능했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화석연료 남용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화석연료는 무한히 싸게 공급될 수 있는 자원으로 생각됐다. 이런 흥청망청함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1973년에 첫 번째 오일 쇼크가 발생하고 석유 가격이 급등하자 화석연료의 고갈이라는 문제가 빠르게 부각되었다. 그때 선진 산업국들은 에너지 소비의 94.2%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등이 선택한 전략은 핵 발전을 급속하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1973년에서 1996년까지 전세계의 핵 에너지 의존은 0.9%에서 6.7%로 증가했으며 선진 산업국의 경우 10.9%까지 증가했다. 화석연료 사용량은 줄었을까? 선진 산업국의 화석연료 의존 비율은 아직도 83.1%에 이르며, 총 소비량은 도리어 21% 가량 증가했다. 고갈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석연료를 점점 더 흥청망청 써고 있다.
진짜 위기는 반대방향에서 발생했다. 화석연료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써서 생긴 위기, 그것이 이른바 기후변화이다.
어디든 날씨는 매일매일 변화하며 가끔씩은 심한 홍수와 가뭄, 태풍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일정한 기후가 유지되고 있고 오랜 시간 이에 적응해온 인간 사회와 생태계는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의 날씨 변화가 아니라, 지구 기후 체계 자체가 변화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는 바로 이런 거대한 변화를 말한다.
원래 지구 대기 중에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자리잡고 있어 지구에서 발생한 열이 우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온실효과 덕에 지구 온도는 생태계 유지에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로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많아지면 이 온실효과가 강해져서 지구 기온은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화석연료 낭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쌓이게 된다. 폭풍, 엘니뇨, 해일 같은 기상 이변들은 대기 중에 에너지가 쌓이면 이를 풀기 위해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따라서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더욱 심하게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지구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과 기상 이변의 빈발을 통칭하여 기후변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래를 빼앗는 기후변화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온도가 상승하면서 바닷물 부피가 팽창하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다. 그 결과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일간지는 남태평양의 두 섬이 해수면 상승의 첫 희생물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마샬 군도 남쪽 키리바티 공화국의 두 섬이 바다에 잠긴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예견한 일이지만 시작이 이렇게 빠르리라곤 거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태평양과 인도양 산호초 섬들의 평균 최고 고도는 해발 2m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은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다.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해안 평야 지대에 살고 있으므로 해수면 상승은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침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미 약 4천6백만 명에 이른다.
온도 상승은 지구의 온갖 생명체들을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숲이 온난화에 적응하려면 다음 100년 동안 극지방을 향해 150~550킬로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구 육지 면적의 17%를 덮고 있는 한대림이 지금의 10~50%로 줄어들 수도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다. 사람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번성하던 질병이 온대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아열대 질병인 말라리아가 번성하고 있다.
기상 이변은 예측조차 곤란하다. 20세기 들어 가장 피해가 컸다는 1997-98년의 엘니뇨 현상,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 계속되고 있는 마른 장마와 집중 호우 등은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상이변이 더욱 자주, 더욱 파괴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상과 관련된 보험회사들이 1990년대 들어 줄줄이 파산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대에 비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보상액이 네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기후변화 추세가 다음 세기 내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세계 2천5백여 과학자들의 집단인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IPCC)’는 지금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온도 상승은 계속될 것이며, 해수면 상승도 앞으로 수 백년 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화석연료 남용이 미래를 빼앗고 있다.
기후변화는 불확실하다?
1988년 세계기후회의에서 기후변화를 ‘핵전쟁에 버금가는 재난’으로 비유한 이래 국제 사회의 대응이 본격화되기 시작되었다. 화석연료 소비와 지구 온난화의 관계는 처음에는 몇몇 과학자들이 의견에 불과했지만 앞서 언급한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기후변화로 초래될 불길한 미래가 점차 드러났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 3차 총회에서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평균 5%씩 감축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첫 희생자가 되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나라들이 빨리 감축 의무를 실천하고 훨씬 강한 감축(60~80%)에 돌입해야 태평양 사람들에게도 다음 천년을 지낼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의 평균 기온은 1908년 이후 2.5℃나 올라갔으며, 일년치 비의 절반 이상이 하루 동안 쏟아지는 이변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예컨대 우리나라 재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이라는 이는 ‘지구온난화란 있는가?’라는 문건을 배포하기도 했다. 물론 기후 체계와 생태계의 복잡성을 현대 과학의 실력으로 모두 파헤칠 순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예측에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란 무엇인가?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것은 기후변화가 일어날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보다 그 피해의 양상이 얼마나 파괴적일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후변화협약은 ‘심각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있는 경우 과학적으로 완전한 확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방 조치를 연기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가지 대안
20세기를 화려하게 만든 화석연료의 시대는 다음 세기 중반이면 막을 내릴 것이다. 더 늦춘다면 그것은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를 건 도박이 될 뿐이다.
화석연료 시대 다음의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핵 발전을 끝없이 확대하여 에너지 소비를 계속 증가시키는 것, 두 번째는 물질 생산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태양열과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화려함을 지속하기 위해 핵 발전의 확대를 지지하고 처리불가능한 폐기물을 후손에게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생산 규모를 희생하는 대신 함께 나누는 세상을 창조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에 의존할 것인가? 이것이 21세기 문턱에 걸려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당장의 문제, 즉 화석연료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달려있다. 남용하지 않는 한 화석연료는 가장 편리하고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낭비를 없애고 후손들과 나눠 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화려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핵 에너지를 선택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화려한 20세기를 가능하게 한 것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20세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지난 세기를 풍요와 발전의 시대라고 부른 대신 두 차례 세계대전과 이념갈등으로 얼룩진 ‘극단의 시대’라고 혹평했으며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20세기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거대 위험의 시대라고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가 막대한 물질적 부를 누린 시대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8억의 인구가 어디선가 굶주리고 있다고 해도 인류 전체로서는 분명히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있다.
무엇이 20세기를 떠받쳤는가? 20세기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석탄과 석유, 즉 화석연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의 끝과 끝을 기차로 이어주고 육중한 기계를 움직여 생산 규모의 한계를 깨뜨린 것이 석탄이었고, 오늘날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산·소비 단위로 만들고 있는 정보통신·교통 기술을 작동시키는 막대한 에너지도 결국 화석연료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는 에너지 소비의 약 8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 보자. 세상은 석유로 만든 물질로 가득 차 있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플라스틱 식기와 장난감, 비닐 포장과 전자제품 껍데기까지, 온통 석유로 만들어진 상품들이다. 수십억년을 진화한 지구 생태계도 이 물질들은 너무 낯설다. 이들을 분해하여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보낼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어쨌든,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제품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물질들보다 단단하고 가공하기 쉬우며, 무엇보다 화려하다. 20세기의 화려함은 화석연료로 인해 가능했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화석연료 남용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화석연료는 무한히 싸게 공급될 수 있는 자원으로 생각됐다. 이런 흥청망청함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1973년에 첫 번째 오일 쇼크가 발생하고 석유 가격이 급등하자 화석연료의 고갈이라는 문제가 빠르게 부각되었다. 그때 선진 산업국들은 에너지 소비의 94.2%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등이 선택한 전략은 핵 발전을 급속하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1973년에서 1996년까지 전세계의 핵 에너지 의존은 0.9%에서 6.7%로 증가했으며 선진 산업국의 경우 10.9%까지 증가했다. 화석연료 사용량은 줄었을까? 선진 산업국의 화석연료 의존 비율은 아직도 83.1%에 이르며, 총 소비량은 도리어 21% 가량 증가했다. 고갈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석연료를 점점 더 흥청망청 써고 있다.
진짜 위기는 반대방향에서 발생했다. 화석연료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써서 생긴 위기, 그것이 이른바 기후변화이다.
어디든 날씨는 매일매일 변화하며 가끔씩은 심한 홍수와 가뭄, 태풍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일정한 기후가 유지되고 있고 오랜 시간 이에 적응해온 인간 사회와 생태계는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의 날씨 변화가 아니라, 지구 기후 체계 자체가 변화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는 바로 이런 거대한 변화를 말한다.
원래 지구 대기 중에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자리잡고 있어 지구에서 발생한 열이 우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온실효과 덕에 지구 온도는 생태계 유지에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로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많아지면 이 온실효과가 강해져서 지구 기온은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화석연료 낭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쌓이게 된다. 폭풍, 엘니뇨, 해일 같은 기상 이변들은 대기 중에 에너지가 쌓이면 이를 풀기 위해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따라서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더욱 심하게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지구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과 기상 이변의 빈발을 통칭하여 기후변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래를 빼앗는 기후변화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온도가 상승하면서 바닷물 부피가 팽창하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다. 그 결과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일간지는 남태평양의 두 섬이 해수면 상승의 첫 희생물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마샬 군도 남쪽 키리바티 공화국의 두 섬이 바다에 잠긴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예견한 일이지만 시작이 이렇게 빠르리라곤 거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태평양과 인도양 산호초 섬들의 평균 최고 고도는 해발 2m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은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다. 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해안 평야 지대에 살고 있으므로 해수면 상승은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침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미 약 4천6백만 명에 이른다.
온도 상승은 지구의 온갖 생명체들을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숲이 온난화에 적응하려면 다음 100년 동안 극지방을 향해 150~550킬로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구 육지 면적의 17%를 덮고 있는 한대림이 지금의 10~50%로 줄어들 수도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다. 사람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번성하던 질병이 온대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아열대 질병인 말라리아가 번성하고 있다.
기상 이변은 예측조차 곤란하다. 20세기 들어 가장 피해가 컸다는 1997-98년의 엘니뇨 현상,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 계속되고 있는 마른 장마와 집중 호우 등은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상이변이 더욱 자주, 더욱 파괴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상과 관련된 보험회사들이 1990년대 들어 줄줄이 파산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대에 비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보상액이 네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기후변화 추세가 다음 세기 내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세계 2천5백여 과학자들의 집단인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IPCC)’는 지금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온도 상승은 계속될 것이며, 해수면 상승도 앞으로 수 백년 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화석연료 남용이 미래를 빼앗고 있다.
기후변화는 불확실하다?
1988년 세계기후회의에서 기후변화를 ‘핵전쟁에 버금가는 재난’으로 비유한 이래 국제 사회의 대응이 본격화되기 시작되었다. 화석연료 소비와 지구 온난화의 관계는 처음에는 몇몇 과학자들이 의견에 불과했지만 앞서 언급한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기후변화로 초래될 불길한 미래가 점차 드러났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 3차 총회에서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평균 5%씩 감축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첫 희생자가 되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나라들이 빨리 감축 의무를 실천하고 훨씬 강한 감축(60~80%)에 돌입해야 태평양 사람들에게도 다음 천년을 지낼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의 평균 기온은 1908년 이후 2.5℃나 올라갔으며, 일년치 비의 절반 이상이 하루 동안 쏟아지는 이변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예컨대 우리나라 재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이라는 이는 ‘지구온난화란 있는가?’라는 문건을 배포하기도 했다. 물론 기후 체계와 생태계의 복잡성을 현대 과학의 실력으로 모두 파헤칠 순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예측에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란 무엇인가?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것은 기후변화가 일어날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보다 그 피해의 양상이 얼마나 파괴적일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후변화협약은 ‘심각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있는 경우 과학적으로 완전한 확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방 조치를 연기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가지 대안
20세기를 화려하게 만든 화석연료의 시대는 다음 세기 중반이면 막을 내릴 것이다. 더 늦춘다면 그것은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를 건 도박이 될 뿐이다.
화석연료 시대 다음의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핵 발전을 끝없이 확대하여 에너지 소비를 계속 증가시키는 것, 두 번째는 물질 생산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태양열과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화려함을 지속하기 위해 핵 발전의 확대를 지지하고 처리불가능한 폐기물을 후손에게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생산 규모를 희생하는 대신 함께 나누는 세상을 창조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에 의존할 것인가? 이것이 21세기 문턱에 걸려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당장의 문제, 즉 화석연료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달려있다. 남용하지 않는 한 화석연료는 가장 편리하고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낭비를 없애고 후손들과 나눠 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화려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핵 에너지를 선택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