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와 출판::
'환경호르몬'에 얽힌 이야기들
서형원
2010. 2. 9. 23:02
‘환경호르몬’에 얽힌 이야기들 석유 문명의 위기 20세기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석유이며, 현대 문명은 곧 석유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를 특징짓는 지구촌 단일 시장은 석유로 움직이는 육상, 항공, 해운 교통수단에 의해 실현됐으며 현대를 뒷받침한 막대한 생산력 또한 석유로 움직이는 육중한 기계들 때문에 가능해졌다. 석유로 전력을 생산해 공급하면서부터 ‘현대화’된 가정 생활도 시작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우리 주위는 온통 석유화학 제품들로 가득차 있다. 석유화학물질인 합성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며, 플라스틱 식기와 장난감도 석유로 만든 제품이다. 갖가지 비닐 포장재들과 전화기, 텔레비전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은 온통 석유로 만든 상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20세기를 건설한 석유가 지금 현대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석유 문명은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를 양면에서 협공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기상 재해와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생명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지구 기후 시스템이 석유를 남용한 대가로 혼란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호 환경칼럼에 소개한 바 있다. 석유 문명의 또 다른 위협은 호르몬 교란 화학물질, 소위 ‘환경호르몬’ 물질이다. 그동안 편리하고 안전한 물질로 여겨지던 수많은 석유화학 물질들이 인간과 모든 생물종의 생식 체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또 하나의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북극 원주민들을 위협한 화학물질 독성이 있는 유해화학물질 중에서도 호르몬 교란물질(hormone disruptor), 혹은 내분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은 생체의 호르몬 분비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말한다. 이 물질은 생태계의 여성화를 일으키는 등 생물종의 생식능력을 감소시켜 종의 존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호르몬 교란물질은 이전에 알려진 화학물질의 작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농도에서 피해를 일으키며 먹이사슬을 통해 생체에 농축되고 대물림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유명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도 호르몬 교란물질이며, 전기 절연제로 오랫동안 쓰인 폴리염화비닐(PCB), 합성수지 원료인 비스페놀A, 플라스틱 식기에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 컵라면 용기에 쓰이는 스티렌, 각종 농약과 반도체 생산 공정의 세정제 등이 모두 호르몬 교란물질로 알려져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물질들이 우리 생활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화학적으로 안정된 물질로 여겨진 생활 주변의 플라스틱 제품들이 모두 호르몬 교란물질을 포함하거나 제품의 생산, 사용, 폐기 과정 중에 이같은 물질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호르몬 교란물질의 피해는 지구촌 전체에 걸쳐 발생하고 있으며,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지구 곳곳을 떠돌며 모든 생명체 속에 축적되고 대물림되어 왔다. 92년 덴마크의 닐스 스카케벡 박사가 남성의 평균 정자수가 45% 감소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래, 스코틀란드, 프랑스, 벨기에, 핀란드 등에서 유사한 결과가 발견됐으며 지난해 일본에선 20대 남자 50명 중 단 2명만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정상 정자수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미국에선 플로리다의 대머리독수리와 수컷 악어들이 생식능력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영국에선 합성세제의 호르몬 교란으로 암수 모두의 생식기를 가진 잉어가 대량 발견됐으며, 일본에선 잉어와 가자미의 암컷화 현상이 발견됐다. 가장 끔찍한 일은 죄없는 북극 원주민들에게 나타났다.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생산 금지된 악명높은 호르몬 교란물질 PCB가 북극권 이누이트 족 사람들의 체내에 농축된 것이다. 어린이들은 만성 중이염과 면역체계 이상에 시달렸으며 어머니의 모유에서까지 농축된 PCB가 발견됐다. 이웃 종족들은 그들과의 결혼을 거부했고 그들이 잡은 생선은 팔리지 않게 됐다. 이누이트 족의 언어에는 오염이라는 단어가 없으며 그들은 화학물질을 생산하거나 사용한 적도 없다. 그러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선진국에서 수십년 전에 만들어낸 PCB가 대기 순환과 생태계 먹이사슬을 따라 최대 37억 배까지 농축되어 이누이트 어머니들의 몸과 북금곰 체내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호르몬 교란물질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